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키타 히데이에 (문단 편집) == 평가 ==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고, 임종을 앞둔 히데요시를 보고 슬퍼서 '''너무 격하게''' 울어버리는 바람에 "하치로, 지금부터 중요한 이야기니까 조금만 조용히 해주렴." 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야사도 있을 만큼 감정도 풍부했던 인물이었다. 다만, 현대 학계는 해당 야사를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당시 우키타는 [[정유재란]]으로 조선에 파견되어서 본토에 없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코바야카와 히데아키]]의 배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황이고 나발이고 당장 죽이러 가겠다며 분노를 표했던 걸 보면 도련님다운 정의감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과는 별개로 히데요시 사후에 정치력의 한계로 가문의 분열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해 [[오타니 요시츠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자기 가문의 일을 남에게 맡기는 촌극을 보여주었고, [[벽제관 전투]]나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승리를 거두어 중납언(中納言)까지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잦은 실수를 저지르며 [[가토 기요마사]]를 비롯한 휘하 장수들에게 총대장으로서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가 지닌 한계 역시 분명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장이 되어 [[하치조마치|하치죠지마]]로 유배되어 일생을 보내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가독을 승계하고, 절대 권력자인 히데요시에게 신뢰와 지원을 받았던 인생 전반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당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격이다. 정리하자면 큰 키를 가진 인정이 많은 인물이었지만[* 당대 기준으로 장신인 것은 맞으나, 얼굴이 잘생겼었다는 말은 현대에 만들어진 말이다. 현대 기준으로 당대 그려진 초상화를 보고 각종 대중매체와 게임 일러스트 등지에서 미남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잘못된 인식이 생긴 것. 정작 우키타 히데이에가 얼굴이 잘생겼다는 당대 기록은 없다.],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군재와 약간 문제가 있어 보이는 정치력이 아쉽다면 아쉽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도쿠가와 이에야스]] 역시 이러한 점을 간파하여 그를 죽이지 않고 하치죠지마로 유배만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쉽게 말해서, 외딴 섬으로 보내버리기만 하더라도 이에야스 자신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할 인물이라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